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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346호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을 발굴조사하는 호남 문화재연구원은 11월15일 오후 2시 조선 시대 훈련청과 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화약 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11점, 자기류, 기와류 등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를 낸다" 하여 붙여진 비격진천뢰는 조선시대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이 발명한 조선의 최첨단 화약무기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귀신폭탄이라 불리며 두려움에 떨게 한 조선의 비밀병기입니다.

비격진천뢰는 목표물에 날아가서 천둥번개와 같은 굉음과 섬광, 수많은 파편을 쏟아내면서 폭발하는 시한폭탄으로, 완구(碗口)라는 화포에 장전해서 사용하였다. 완구는 조선 시대에 만든 화포 가운데 하나로, 대완구·중완구·소완구의 세 가지가 있다.

발굴 현장은 전북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성내리 149-1, 읍성 내 객사)이며 군기고(軍器庫)는 무기를 넣어 두는 창고를 말하며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은 1417년(태종 17년)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되었고 조선 시대 읍성 가운데 제작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진 읍성으로, 행정과 군사의 요충지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2003년 고창군에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발굴조사 복원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그 동안 건물지와 시설물, 성벽, 문지, 해자(垓子) 등이 발굴되었다. 발굴조사 성과와 고지형 분석을 바탕으로 읍취루, 동헌의 담장과 삼문, 연지(蓮池, 연못)와 정자 등이 복원되었으며, 북·서벽의 정비 등도 꾸준히 시행 중이다.

<해자(垓子) 뜻은 성벽 주변에 인공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하천을 이용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 시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훈련청과 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지를 비롯하여 10여동의 건물지와 구덩이, 도로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1호 수혈(구덩이)에서는 조선 시대에 발명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한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비격진천뢰가 출토되었다. 바로 인접하여 포대(砲臺) 시설도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나온 비격진천뢰는 모두 11점으로 비교적 온전한 상태이며, 크기는 지름 21㎝, 무게 17~18㎏ 정도로 비슷한 상태다. 현재까지 보고된 비격진천뢰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보물 제860호를 비롯하여 모두 6점에 불과하다. 이번에 발견된 11점은 그 수가 상당히 많고, 새롭게 출토된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비격진천뢰가 나온 구덩이 주변에서는 포사격 시설로 추정되는 포대(砲臺)가 조사됐다. 평면이 원형형태로 규모는 지름 170㎝이다. 돌을 편평하게 깔아 견고하게 만든 후 흙을 다져 바닥면을 마련하였다. 또한, 포의 거치대로 추정되는 2개의 기둥구멍이 포대 남쪽에서 확인되었다.

호남 문화재연구원은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이 왜구의 방어를 위해 축성된 점으로 보아, 훈련청‧군기고 등 건물지, 비격진천뢰와 포대시설 등은 무장읍성의 군사적인 성격을 고고학적으로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격진천뢰 뜻

화포의 하나였던 대완포구(大碗砲口)로 발사하면 500∼600보를 날아가 떨어지는 일종의 폭탄이었다. 재질은 무쇠이며 지름 21㎝, 둘레 68㎝이다. 몸체는 위아래를 둥글게 좁히고 가운데 부분을 퍼지는 형태로 제작했다. 비격진천뢰는 공격 지점에 낙하한 후 바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안에 있는 화약이 폭발하는 원리로 제작되었다. 몸체 안에는 대나무로 통을 만들어 무쇠 파편을 장전해 두었다. 아울러 전략에 따라 비격진천뢰의 폭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포탄들과 다른 방식의 발화 장치를 가지고 있어 화공술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였던 박진(朴晋)이 처음에는 일본군에게 패하였지만 경주를 수복하기 위해 군사를 모아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비격진천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일본군은 비격진천뢰의 위력을 몰랐기 때문에 진영 안에 터지지 않고 떨어진 포탄을 만져보다가 터져버린 포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비격진천뢰는 적진을 공격하기 위한 훌륭한 무기였지만 경주 전투 이후로는 잘 활용되지 않았다. 비격진천뢰는 보물 제860호로 지정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