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부마민주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따라서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은 정부 주관 공식행사로 진행됩니다.

부마민주항쟁이 가진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하며, 잊혀진 부마항쟁을 재평가함으로써 항쟁이 가진 민주적 가치를 전 국민과 공감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기념식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제4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민주, 자유, 평화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국가기념식으로 추진합니다.

2019년 올해는 예년보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행사는 대규모로 개최하며 40주년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반영하고 부마항쟁에 대한 전 국민의 인지도를 높일 계획입니다.

2019년 10월16일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로 치르는 1번째 기념식으로,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범국민적 행사로 개최됩니다. 지상파 TV중계도 있을 예정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9월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부마민주항쟁 기념일 제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심의 의결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경남 부산, 마산의 시민과 학생들이
유신헌법, 긴급조치 발동 등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운동으로 1979년 10월16일 부산에서 처음 발생해 10월18일 창원지역까지 확산됐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이후 발생한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정신이 이어졌으며,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는 관련 지자체, 단체, 각계 전문가 의견수렴을 통해 지난해 9월부터 부마민주항쟁 최초 발생일인 10월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습니다.

위원회는 이후 각 지자체의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범국민 추진위원회 발족과 전국적 서명운동 실시, 지방의회 촉구결의안 채택 등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행안부는 부마민주항쟁의 국가기념일 지정에 따라 오는 10월16일(수) 경상남도 창원에서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첫 정부행사로 거행할 예정입니다.






▶ 부마민주항쟁이란?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16일~10월20일까지 부산, 마산 및 창원 등 경남 일원에서 유신체제에 대항하여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말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권력 아래 유신독재의 결정판은
유신헌법, 긴급조치 제9호였습니다.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개정을 청원만 해도 처벌하고 그런 행위를 방송하거나 보도해도 처벌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언론은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알릴 수 없었고 국민들은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발생 : 1979년 10월16일 부산에서 최초발생, 10월18일 마산, 창원지역 확산

배경 : 유신헌법, 긴급조치 발동 등 유신체제에 항거하며 발생한 대규모 만주화운동




▶ 부마민주항쟁 전개

➀ 1979년 5월 김영삼 의원, 최연소 신민당 총재 당선

➁ 1979년 8월9일 YH무역 노동자 200여명 신민당 당사 점거농성

- YH무역 노동자의 호소문과 성명서

<호소문>
저희들은 모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고 일찍이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 냉대한 사회에 뛰어들어 산업의 역군으로써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저희 회사는 1970년에는 수출실적이 많아 석탑훈장까지도 받은바 있습니다. 수출실적이 높으면 나라도 더욱 발전할 수 있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다는 국민학교 시절의 배운 것을 더듬으며 우리는 더욱더 잘사는 나라에 기대하여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3월 30일 폐업 공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 근로자들이 신민당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회사, 노동청, 은행이 모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기에...기숙사에서도 쫓겨나 오갈 곳이 없었습니다. 저희들의 회사가 정상화되어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성명서>
경제 파탄으로 인한 기업의 도산이 정부 정책의 책임이지 저임금으로 일해 온 노동자의 책임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1. 회사자본 23억에 비해 은행이 45억을 융자해 주었기 때문이다.
2. 장용호 회장이 15억원을 미국에 유출해갔기 때문이다.

< 우리의 요구 >
1. 정부와 은행은 과다한 은행 대출로 회사 부실을 책임지고 해결하라
2. 정부는 150억 외화를 유출시킨 장용호 회장을 즉각 소환하라
3.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죽음으로 항쟁 할것이다.

➂ 1979년 9월~10월 공화당, 김영삼 총재 징계동의안 제출 및 제명안 통과

➃ 1979년 10월15일 부산대, 민주선언문 배포 및 교내시위 준비

➄ 1979년 10월16일 부산대학교 교내 시위를 시작으로 학생과 시민 5000여명 주도, 반민주시위 전개

➅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 비상계엄령 선포 및 1058명 연행, 66명 군사재판 회부

➆ 1979년 10월18일 경남대학교 교내시위를 중심으로 마산, 창원, 진주지역 등 시위 확산

➇ 1979년 10월20일 마산, 창원지역 위수령 발동 및 506명 연행, 59명 군사재판 회부

➈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김재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