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IT 2018. 2. 1. 14:20
인류가 발생한 후 오랜시간동안 인류는 원시적인 생활을 해왔습니다.

선사시대(원시시대)
먼저:선 역사:사
글자 그대로 역사시대 이전의 시기를 말한다.즉 문자가 없는시대,문자 기록이 없는시대를 말한다.문자라는 것이 없는데 당연히 기록도 없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가 배우는 선사시대는 무엇을 보고 기록할까요. 그 시대를 아는 방법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고 남긴 유적이나 유물을 통해서 그 시대 모습을 추정할수밖에 없습니다.

선사시대의 인간 생활을 연구하는 학문을 고고학,특히 선사 고고학 이라고 한다.고고학자들은 긴 기간 동안에 선사 시대를 도구 제작 기술과 재료를 기준으로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등으로 구분한다.

선사 시대의 시대 구분
1816년 덴마크의 톰젠(C.J.Thomsen, 1788~1865)은 처음으로 고고학의 시대 구분을 하였다.즉 인류의 역사를 사용한 도구에 따라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로 구분하였다.이후 1865년 영국의 러보크(John Lubbock,1834~1913)는 석기 시대를 다시 둘로 나누어 주로 뗀석기(타제석기)를 사용한 시대를 구석기 시대,간석기(마제석기)를 만들어 쓴 시대를 신석기 시대로 각각 구분하였다.

1.구석기 시대
(1)구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

우리 민족의 기원
몽골 인종에 알탕이 어족에 속하는 우리 조상들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일대를 생활 터전으로 삼아 왔다. 자연환경이 다양한 이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지나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기틀이 형성되었다. 동북아시아에는 선사시대부터 여러 민족들이 각기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우리 민족도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 교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였다. 또한 우리 민족은 농경 생활을 바탕으로 민족 국가를 유지하면서 민족 문화를 꽃 피워나갔다.

(2)구석기시대의 시기 구분

우리나라와 주변 지역에서는 약 70만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구석기시대에는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였는데 돌을 다듬는 기법에 따라 전기,중기,후기의 세시기로 나누어진다.

전기:양면 가공 석기로 만능 연장이었던 주먹도끼를 비롯하여 찍개,찌르개 등과 같이 큰 몸돌로 한개의 도구를 만들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약 10만 년 전까지 이어졌다.처음에는 한쪽 면만 날이 선 외날 찍개였다가 점차 양쪽 면에 날이 선 양날찍개를 만들어 썼다.

중기:큰 몸돌에서 떠어 낸 돌조각을 정교하고 세련되게 잔손질하여 한개의 석기를 한가지 용도로 썼다.

후기:쐐기 같은 것을 대고 눌러떼어 작고 형태가 같은 복합 도구를 다량으로 만드는 기술적 발전을 보였다 또한 슴베찌르개를 나무나 뼈 등에 연결하여 쓰는 이음 도구가 만들어졌다

(3)구석기 시대의 유적
1933년 함경북도 웅성군 동광진에서 철도 공사 중에 흑요석석기,골각기 등이 출토되면서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 유적으로 평가되는 이곳에서는 들소 털코끼리의 화석과 고인류의 유물등도 함께 발견되었다.그러나 일본 국내에서 아직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뜻밖에 한반도에서 먼저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자 식민지 사관이 지배한던 일본 학계는 동관진 유적의 실체를 부정하였다.그러나 광복후 1960년대에 이르러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잇달아 발견되어 한반도에서의 구석기 시대 존재가 더욱 확실해졌다.

구석기 유적의 발견이 다시 활기를 띤 것은 1980년 이후이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경기도 연천군 남계리와 양평군 병산리,충북 제천시 창내와 단양군 금굴,전남 승주군 곡천과 화순 등지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200여 곳에 이른다. 공식적으로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의 기원이 크게 올라가게 되었다.구석기 유적은 공주 석장리,연천군 전곡리,단양군 수양개 동굴유적 충북 청원시 두루봉,제주 빌레못,평양검은모루동굴,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이 있다.

(4)구석기 시대의 사회와 문화

구석기인의 모습
한반도에 생존했던 사람으로 원인(곧선사람)은 검은모루 사람으로 추정되면 굴포유적과 상시바위그늘(단양)에서 발견되 사름은 고인(슬기사람)으로 생각된다.이 후 이들은 호모에렉투스 단계에서 진화한것으로 약40만~25만년전이다. 인류단계에 속하는 것은 네안데르탈인으로 이들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무덤을 만들기도 한다. 이어 발견되 승리산인(덕천인)이나 역포인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신인은 4만년전에 등장하는 현생 인류로 돌을 다루는 기술이 석기를 만들어 사용했얼 뿐만 아니라 짐승의 뼈나 뿔등을 가지고 여러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5)구석기 시대의 생활모습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기후변화나 맹수또는 다른 집단과의 생존경쟁에 대처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숲이나 강가에서도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식량 채취를 위해 이동 생활을 하였음을 추측할수 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주거지였던 막집 자리에 기둥자리,담자리와 함께 불을 사용한 사실을 보여주는 화덕자리 등이 발견되고 있다. 집터는 대개 3,4명에서 10여명이 살수 있는 정도의 크기이다.구석기 시대에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무리 사회를 이루어 살았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무리중에서 연장자 또는 경험이 많거나 지혜로운 자를 우두머리 삼아 평등한 원시적 공동체적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열매나 뿌리 등을 채집하여 먹거나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나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뼈도구(골각기)를 사용하여 사냥 물고기잡이 등을 하였으면 사냥감이나 계절에 따라 이동생활을 하였다.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빙하기가 지나고 다시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다양한 동식물이 새로이 나타났다. 토끼,여우, 새 등 작고 날쌘 짐승을 잡기 위해 활,창,작살등의 도구가 새로이 고안되었다.
이것들은 크기를 작게 만든 잔석기로서 나무나 뼈 등에 꽂아 쓰는 슴베찌르개와 같은 이음 도구로 만들어졋다.이음도구를 사용한 시기를 중석기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함경북도 웅기군 부포리,평양시 만달리,충남 공주 석장리,충북 단양 금굴등이  중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돌이나 동물의 뼈또는 뿔을 이용하여 조각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널리 알려진 평양시 상원검은 모루,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충북 단양 수양개,충남 공주 석장리 등에서 물고기 고래등을 새긴 조각이 나왔다.구석기인들이 살던 유적지에서 뼈바늘 각종 장신구가 발견되는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몸을 꾸몄으며 예술품을 만들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들 조각품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사냥의 대상이 되는 동물의 번성이나 사냥의 성공을 축원하는 주술적의미가 반영된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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